투자의 고통을 숫자로 측정할 수 있을까?
📌 원문: https://m.blog.naver.com/hyunsoo-is-cute/224432880019

투자는 고통입니다.
오늘은 이 고통에 대해 지표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MDD: 얼마나 깊게 떨어졌는가
투자 전략을 비교할 때 수익률 다음으로 많이 보는 숫자가 MDD입니다.
Maximum Drawdown. 고점에서 저점까지 최대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1억원으로 시작해서 2억원까지 갔다가 다시 1억원까지 떨어졌다면, MDD는 -50%입니다.

2억원 고점에서 1억원 저점까지, MDD -50%
직관적입니다. 연평균 수익률인 CAGR이 30%라고 해도 중간에 MDD -80%가 있었다면 실제로 투자하기는 쉽지 않겠죠. 그래서 저도 백테스트를 할 때 CAGR과 MDD를 가장 먼저 봅니다.
그런데 MDD 하나로 투자자가 겪는 고통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두 자산이 있습니다.
|
가격 경로 |
MDD |
회복까지 걸린 시간 | |
|
자산 A |
100 → 20 → 100 |
-80% |
하루 |
|
자산 B |
100 → 70 → 72 → 75 → 80 → 85 → 90 → 95 → 100 |
-30% |
5년 |
자산 A는 오늘 -80%가 났는데, 다음날 +400%가 나서 바로 원래 가격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산 B는 MDD가 -30%밖에 안 됩니다. 대신 100으로 돌아오는 데 5년이 걸렸습니다.

MDD만 보면 A가 압도적으로 위험합니다. -80%와 -30%니까요.
그런데 실제 투자자는 어느 쪽을 더 견디기 힘들까요?
하루 동안 -80%를 보는 것도 끔찍하겠지만 하루만에 회복했습니다. 그날 바빠서 잠깐 주식 안보고 넘어갔다면 무슨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을겁니다. 반면에 -30%지만 물린 상태로 5년 동안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MDD에는 이 차이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Underwater Period: 얼마나 오래 물려 있었는가
이런 MDD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지표가 있습니다. Underwater period 라고 해서, 내가 물려있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가? 이죠. 숨참고 잠수하는 시간 동안의 고통을 표현한 말처럼 보이네요.
고점이 100이라고 하면 100에서 80으로 떨어지면 underwater에 들어가고, 다시 100을 넘어야 빠져나옵니다.
앞의 두 자산을 underwater 차트로 다시 그려보면 이렇습니다.

자산 A의 MDD는 -80%지만 하루 만에 회복했습니다. 반대로 MDD -30%였던 자산 B는 5년 동안 underwater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고통을 좀 더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상합니다.

100 → 99 → 100과 100 → 20 → 100을 비교해보죠.
둘 다 하루 만에 회복했다면 underwater period는 똑같습니다. 하나는 잠깐 -1%가 된 것이고, 하나는 내 재산의 80%가 날아갔다 돌아온 건데 말이죠. 이 두 고통을 같은 선상에 놓아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Underwater period는 시간을 잘 측정하지만 깊이를 모릅니다. MDD는 깊이를 알지만 시간을 모릅니다.
그럼 둘을 같이 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Ulcer Index: 깊이와 시간을 함께
Ulcer는 궤양입니다. 수익률 곡선에서 아래로 깊이 파고 들어갔다가 올라오는 모습이 궤양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일거 같습니다. 아니면 투자자에게 얼마나 위궤양을 유발하는지를 측정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지표일지도요.
Ulcer Index는 가장 큰 하락 한 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매 시점 고점 대비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계속 측정합니다. 그리고 그 drawdown들을 제곱하고, 평균을 낸 뒤, 제곱근을 구합니다.

자세한 식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깊이와 기간을 둘다 보는 지표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래서 ulcer index는 깊게 떨어질수록 크게 반영되고(제곱), 오랫동안 underwater에 있어도 값이 커집니다(평균에 계속 쌓임).
MDD -30%를 찍고 바로 회복한 자산보다, -30% 부근에서 몇 년 동안 헤매는 자산의 Ulcer Index가 훨씬 높아지는거죠.

이쯤 되면 꽤 괜찮아 보입니다.
얼마나 깊게 물렸는가.
그리고 얼마나 오래 물려 있었는가.
둘 다 반영합니다.
그럼 그냥 Ulcer Index를 보면 되는 걸까요?
또 한번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년 동안 거의 항상 신고가를 찍던 자산이, 딱 하루 -80%를 찍고 다음날 완전히 회복했다고 해봅시다. 10년 중 단 하루입니다.
Ulcer Index는 전체 기간의 drawdown을 평균 내기 때문에, 이 사건의 영향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희석됩니다.

그래서 1개월로 보면 ulcer index, 고통 17.5짜리 사건인데 10년으로 보면 고통 1.6짜리로 줄어듭니다. 별로 안 아파 보이죠. 단순히 ulcer index만 비교하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10년간 우상향해온 다른 주식과 비슷해질겁니다.
그런데 실제 투자자는 어떨까요?
10년중에 단 하루지만 어제까지 1억원이던 계좌가 오늘 2천만원이 되어 있습니다. 이 순간의 고통을 정말 '하루밖에 안 됐으니까' 작게 평가하는 게 맞을까요?
Ulcer Index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Volatility: 얼마나 심하게 흔들리는가
그럼 변동성은 어떨까요?
Volatility(변동성)는 가격이 얼마나 심하게 움직이는지를 측정합니다. 보통 일간 수익률의 표준편차를 연환산해서 씁니다.
100 → 20 → 100 같은 움직임이 발생하면 당연히 변동성이 엄청나게 높아집니다. 앞의 자산 A로 계산해보면 연환산 변동성이 180%를 넘습니다.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충격까지 잡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volatility에는 또 문제가 있습니다.

100 → 110과 100 → 90. 둘 다 큰 움직임이고, 변동성 입장에서는 둘 다 위험입니다.
그런데 투자자 입장에서도 그럴까요? 내 주식이 갑자기 10% 오르는 것을 보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투자자에게 +10%와 -10%는 전혀 다른 사건인데, volatility는 둘 다 '변동성 증가'로 보는겁니다.
더 이상한 경우도 만들 수 있습니다. 가격이 하루에 아주 조금씩, 아주 안정적으로 떨어진다고 해봅시다.
100 → 99 → 98 → 97 → 96 → 95 …
매일 비슷한 폭으로 떨어지니 수익률의 표준편차, 즉 변동성은 거의 0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계속 돈을 잃고 있습니다.
변동성이 낮다고 편안한 투자인 것은 아닌거죠.
Downside Deviation: 아래쪽 흔들림만
그럼 위로 움직이는 것은 빼고 아래쪽 움직임만 보면 됩니다.
Downside Deviation(하방 편차)은 이런 생각에서 나온 지표입니다. 올라가는건 좋은건데 이런 좋은 변동성까지 위험이라고 부를 필요가 있냐는 거죠. Sortino ratio의 분모로도 쓰입니다.
확실히 volatility보다 투자자가 느끼는 위험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70%가 난 자산을 생각해봅시다.
100 → 30
그리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30 근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습니다.

폭락 구간이 지나면 하방 편차와 변동성은 바닥으로 내려가지만, 투자자는 여전히 -70%
가격이 별로 움직이지 않으니 이후의 downside deviation은 낮습니다. Volatility도 낮습니다.
하지만 투자자는 여전히 -70%에 물려 있습니다.
변동성은 낮습니다. 조용합니다. 아주 안정적으로 망해 있는 겁니다.
결국 뭘 봐야 할까?
여기까지 오면 그래서 어쩌라는거냐 싶습니다.
|
시도 |
해결한 것 |
새로 생긴 문제 |
|
MDD |
최대 낙폭의 깊이 |
얼마나 오래 물려 있었는지 모름 |
|
→ Underwater Period |
물려 있던 시간 |
깊이를 모름 (-1%와 -80%가 같음) |
|
→ Ulcer Index |
깊이 + 시간 |
짧고 극단적인 충격이 희석됨 |
|
→ Volatility |
순간적인 충격 |
상승과 하락을 똑같이 위험으로 봄 |
|
→ Downside Deviation |
하락 쪽 흔들림만 |
이미 크게 물려 조용히 있는 고통을 못 잡음 |
계속 새로운 지표를 가져와도 뭔가 하나씩 빠집니다.
우리는 흔히 '위험'이라는 말을 하나의 개념처럼 사용합니다. 그런데 실제 투자자가 느끼는 위험, 혹은 고통은 하나가 아닙니다.
얼마나 크게 떨어지는가.
얼마나 오래 물려 있는가.
얼마나 자주 물리는가.
얼마나 심하게 흔들리는가.
갑자기 크게 깨질 수 있는가.
떨어진 뒤 언제 회복할지 알 수 없는가.
전부 다른 종류의 고통입니다.

MDD는 그중 최대 깊이를 측정합니다.
Underwater Period는 시간을 측정합니다.
Ulcer Index는 깊이와 시간을 같이 보려고 합니다.
Volatility는 흔들림을 측정합니다.
Downside Deviation은 그 흔들림 중 아래쪽에 집중합니다.
각각 다른 질문에 답하는 숫자입니다.
"나는 MDD -30%까지 버틸 수 있어"
따져보면 이 말도 애매합니다.
-30%가 된 다음날 회복하는 것은 버틸 수 있다는 건지,
-30% 상태로 몇 년 동안 기다릴 수 있다는 건지,
매년 -30%를 한 번씩 경험해도 된다는 건지,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30%가 되는 것도 괜찮다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위의 수익률 곡선은 전부 MDD는 -30%로 같습니다.
|
시나리오 |
MDD |
최장 Underwater |
Ulcer Index |
변동성 |
하방 편차 |
|
① 다음 날 바로 회복 |
-30% |
1일 |
0.8 |
23% |
13% |
|
② -30%에 물린 채 4년 |
-30% |
1,008일 |
18.8 |
14% |
14% |
|
③ 매년 한 번씩 -30% |
-30% |
128일 |
12.5 |
11% |
10% |
|
④ 조용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
-30% |
249일 |
7.5 |
14% |
13% |
재미있는 건, 가장 덜 고통스러워 보이는 ①의 변동성이 가장 높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가장 오래 물려 있는 ②는 변동성만 보면 평범합니다.
숫자는 같아도, 투자 경험은 완전히 다릅니다.
나는 어떤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
결국 투자 전략을 고를 때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종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 입니다.
누군가는 -50% 폭락도 몇 달 만에 회복한다면 버틸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20%밖에 안 떨어져도 3년 동안 회복하지 못하면 못 버팁니다.
누군가는 큰 폭락보다 매일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더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이걸 알면 자신에게 맞는 투자 전략도 달라집니다.
깊이 — 계좌가 -50%가 되어도 전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가?
기간 — -20% 상태로 3년을 기다릴 수 있는가?
빈도 — 1년에 한 번씩 -30%를 겪어도 괜찮은가?
흔들림 — 하루에도 ±3%씩 오르내리는 계좌를 매일 봐도 괜찮은가?
급락 — 어제까지 멀쩡하던 계좌가 하룻밤 사이 반토막 나도 버틸 수 있는가?
불확실성 — 언제 회복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를 견딜 수 있는가?
와닿는 부분이 있다면 백테스트를 볼 때 그 고통을 재는 지표부터 확인해보세요.
좋은 투자 전략은 고통이 없는 전략이 아닙니다. 그런 건 아마 수익률도 별로 재미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우리같은 평범한 개인투자자는 고통을 감수하고 수익을 얻어야 합니다. 어떤 고통을 감수하고 수익률을 얻을 것인지 선택해야 하죠.
그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