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불리한 '숏 베팅', 당신은 전세에 살고 있습니다

📌 원문: https://m.blog.naver.com/hyunsoo-is-cute/224017237479


전세 제도 폐지론이 점점 나오고 있습니다.

전세가 무엇인지 세입자와 집주인 입장에서 살펴보고 만약 전세가 줄어들어서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지 한번 살펴보죠.

전세란 무엇인가

전세가 뭔지는 다들 알고 있죠? 임차인(세입자)이 임대인(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대신에 임대인의 집에서 사는겁니다. 원래는 집을 이용하는 대가를 임대인에게 주어야 하는데 무료로 살 수 있죠. 저도 어릴때 처음 전세가 뭔지 듣고 "공짜로 남의 집에서 살 수 있다고? 너무 좋은데? 이거 사기 아니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무이자로 큰 돈을 빌려준다는데 있습니다. 나는 금융 전문가도 아니고 부동산 전문가도 아닙니다. 부동산의 가치를 전문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내가 돈을 빌려주는 사람의 신용도를 평가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실 빌려주는 사람의 신용도를 알 수도 없죠.)

돈을 전문적으로 빌려주는 은행을 보죠.

내가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하면 신용 평가의 전문가인 은행에서 나의 신용도, 내가 담보로 맡기는 부동산의 가치를 평가해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엄밀한 평가를 하고 적정한 이율을 매겨서 대출 여부를 결정합니다.

근데 나는 뭘 믿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큰 돈을 빌려줄까요?

이유는 주거비 부담이 줄기 때문입니다.

전세에 들어가면, 세입자는 월세보다 주거비 부담이 적습니다. 당장 주거비로 나가는 돈이 적으니 더 좋죠. 중소기업 전세 대출 같은걸로 1퍼센트 대 저리로 전세 대출까지 받으면 당장 내 돈은 별로 없지만 월세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살 수 있습니다. 집주인은 내가 당장 거주하지 않을 집을 가지고 무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 좋죠. 결국 모두에게 좋았습니다.

전세사기

최근 전세 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세사기로 통칭되는 각종 전세 관련한 사건 사고가 뉴스를 수놓았죠. (집주인이 처음부터 돈을 떼먹을 작정으로 속여서 돈을 받아가는 진짜 사기부터 부동산 시세 하락, 금리 인상, 잘못된 부동산 시세 평가로 인한 깡통전세, 역전세 등을 전부 전세사기로 통칭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사기와 투자 실패는 구분해야겠지만 우선은 전세사기로 하고 넘어가죠.)

피해를 당한 세입자들은 2030 사회 초년생이 많았고 본인이 그동안 모았던 전재산을 날리고 자살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보증보험을 가입해서 세입자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하지 않은 경우에도, 세금으로 운영되는 보증기관의 특성 상 전 국민이 나눠서 피해를 받았죠.

그 동안은 전세자금대출, 전세보증보험 등 다양하게 전세를 지원해왔던 정부도 6.27 대책등을 통해서 갭투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내고 있습니다.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 살지 마세요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의 장단점을 살펴보죠. 우선 당연히 장점은 월세에 비해 거주비가 싸다는 겁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각종 정책 대출을 활용하면 1% 대의 저리로 대출을 받아서 전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세보증보험료를 내더라도 월세에 비해서는 저렴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단점은, 본인 능력에 비해 좋은 집에서 살게된다는 점입니다. 좋은 집에서 살면 좋은 가구가 필요하죠. 좋은 집에서 사는 나의 품격에 맞는 소비를 해야 하잖아요. 가끔은 스테이크와 와인도 곁들여야 하고 집의 품격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월세 50만원 짜리 집에서 살아야 하는 소득의 사람이 전세 대출로 이자 20만원만 내고 살면서 30만원을 저축하는게 아니라, 전세 대출 이자 50만원을 내야 하는 집에서 살고 덩달아서 소비도 증가합니다. 한번 눈높이가 올라가면 다음 집을 낮추기는 어렵습니다. 한번 생긴 소비 습관을 낮추기는 더 어렵죠.

집주인의 신용 위험이 있습니다. 나는 집에서 공짜로 사는게 아니라 집주인에게 거액의 보증금을 빌려주고 그 이자 대신 사는겁니다. 집주인이 나중에 돈을 돌려주면 별 문제가 없지만, 돌려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집주인이 돈 못돌려준다고 배째라고 해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경매가 유찰되고, 내가 1순위가 아니라서 낮은 가격에 낙찰된 경매로 내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얼마 안되고...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으면 집주인은 돈 못돌려준다고 합니다. 돈을 빌려준건 나인데, 왜 내가 돈을 못 돌려받을까 전전긍긍 해야 하나요?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는 것도 모든 경우에 가능한 것이 아니고, 가입이 되더라도 보험료를 내야 합니다.

투자의 기회비용도 있습니다. 전세 3억원에 들어가는 것 대신 월세 100만원에 살면서 3억으로 투자를 했다고 가정해보죠. 월세 100만원은 연 1200만원이고 3억의 4% 정도 됩니다. 3억으로 투자를 해서 4% 이상을 벌수 있다면 월세에 살면서 투자를 하는게 더 나앗겠죠. 물론 투자는 무위험 수익이 아니니 손실을 볼 위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세보다는 월세에 살면서 투자를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전세를 사는 것은 앞으로 2년간 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최소한 내 월급보다는 덜 오를 것이라는 생각에 기반한 부동산 가격에 대한 일종의 숏 베팅입니다. 내가 주식에 숏 베팅을 해서 맞추면 돈을 법니다. 빅쇼트를 예상해서 큰 돈을 번 마이클 버리를 보세요. 그런데 내가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을거야. 매매하지 말고 전세로 들어가자." 라고 생각하고 전세에 들어가면 어떤가요? 내가 낸 전세금은 집주인의 투자 자금이 되어 시장에 유동성을 더 공급합니다. 내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시장의 하락에 베팅하는데 정작 내 돈은 사실 집 가격을 더 올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죠. 이런 아이러니를 극복하고 진짜로 부동산 위기가 찾아오면서 집 가격이 떨어진다고 해보죠. 집주인이 집 가격이 떨어지면서 전세가격도 떨어져서 다음 세입자를 못 구한답니다. 숏 베팅해서 맞췄는데 돈을 벌기는 커녕 원금(전세금)도 날리게 되네요.

마켓 타이밍 문제도 있습니다. 전세는 2년 계약하기 때문에, 내 자금 상황과 마켓 타이밍이 맞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전세에 들어가서 내 전세 계약이 만기되는 정확히 2년 뒤에 집 가격이 더 떨어지고, 집 값이 떨어졌지만 착하고 성실한 집주인을 만나서 전세금을 잘 돌려받아서 그걸로 원하던 집을 싸게 매수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결국 전세 거주해서 주거비를 아껴서 목돈을 모은 다음 내집 마련을 한다는 주거 사다리 계획은 생각처럼 잘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집주인 입장에서) 전세 주고 갭투자 하세요

지금까지 세입자 입장에서 살펴봤습니다. 이제 집주인 입장에서 살펴볼까요?

집주인 입장에서 전세를 주는 것은 좋은 선택입니다.

내가 비싸고 좋은 집을 샀지만 전세를 주고 저렴한 월세에서 사니까, 소비도 늘어나지 않고 아끼면서 살 수 있죠. 이렇게 아낀 돈으로 또 투자를 하면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투자하면 이자를 내야하는데 전세로 내주면 무이자 대출을 받는 효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전세 만기가 되어서 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세입자를 못 구하면 돈 못준다고 배짱도 좀 부려볼 수 있죠. 정 상황이 안좋아져서 전세금을 좀 낮춰서 세입자를 구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큰 금액을 무이자로 대출받아서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면 이자도 꼬박꼬박 내야하고 원리금 균등 상환이라면 원금도 일부지만 계속 갚아야 합니다. 게다가 대출 상환 기한이 지났는데도 돈을 못 갚으면 은행에서 진짜로 배를 째줍니다.

집을 사서 전세 주고, 전세금으로 집을 사고, 그 집에 또 전세 주고, 전세금으로 집을 사고, 그 집에 또 전세 주고 ... 과거 다주택자 규제가 없던 시절에는 이런 투자가 가능했습니다. 물론 한발 삐끗하면 초기 투자금까지 모두 잃는 고위험 투자긴 하지만 성공하면 큰 수익이 있죠. 그런데 이 경우 내가 실패하면 나만 망하는건 아니죠. 나에게 돈을 빌려준 세입자도 망합니다. 성공하면 나의 이익, 실패하면 공공의 손해죠. 손익비를 따져보면 수익은 무한대, 손실은 한정적인 투자로 괜찮은 방법 입니다.

물론 세입자들 상대해야 하고 뭐 전등을 고쳐달라는 둥, 변기가 막혔다는 둥 관리의 어려움도 있고 사람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긴 하지만 무이자 대출이잖아요. 감수할 만 하죠.

전세자금대출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목적이라지만 전세자금대출은 좀 특이한 상품입니다.

내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내 신용이나 담보를 이용해서 대출을 합니다. 내가 그동안 착실하게 금융 거래를 해왔고, 이정도 소득이 안정적으로 들어오고, 내가 은행에 대신 맡길 물건이 이정도 가치가 있고 뭐 이런 부분을 어필하니 은행에서도 돈 돌려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출을 해주는거죠.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일어나는 사적인 금융거래, 그러니까 일종의 사채인데 이걸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는 건 좀 이상해보입니다. 뭘 믿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죠? 주택담보대출처럼 담보를 잡는 것도 아니죠. 집주인이나 세입자의 신용으로 빌려주는것도 아닙니다. (그런건 그냥 신용대출로 비싼 이자를 내야 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HUG, HF 같은 기관에서 보증을 서줬기 때문입니다. 은행은 세입자랑 집주인은 안 믿어도 HUG는 믿으니까요.

결국 전세자금대출은 서민들에게 주거 지원의 효과는 있었지만 시장에 대출이 풀리면서 유동성이 더 공급되고 전세값 상승, 집값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전세사기 같은 문제가 터져서 HUG 가 손실을 입으면 국민 모두의 세금으로 갚아야 합니다.

전세가 없어지면

전세 제도 자체가 어느날 갑자기 없어지지는 않을겁니다. 민법에도 이미 규정되어 있고 개인과 개인이 계약을 통해서 이렇게 하기로 했다는데 그런걸 금지할 수도 없죠. 다만 정부의 정책 방향은 전세에 대한 혜택을 줄이는 것 처럼 보입니다. 특히 전세에도 DSR 규제가 시행된다면 급속도로 전세가 감소하고 월세가 늘어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주거비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겠죠. 집값의 경우에는 전세로 인한 유동성 공급이 줄어들면서 상승의 동력은 줄어들겠지만 이미 강남 같은 최상급지는 전세 때문에 오른다고 볼 수 있는 영역은 넘어섰습니다. 아마도 양극화가 더 진행되어서 오르는 곳은 더 오르고 힘이 빠져서 가격이 낮아지는 곳도 있지 않을까요? 월세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무한정 오를 수는 없기 때문에 주택가격 대비 월세 수익률 같은 것이 적정한 수준이 될 때까지 월세 가격이 오르고 집 값이 내려서 중간에서 만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론

부동산 시장은 태어난 이상 강제로 참여하는 시장입니다. 주식 시장은 나랑 안맞는 것 같으면 안해도 그만인데, 부동산은 어쩔 수 없이 해야합니다. 월세, 전세, 매매 중에 어떤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할 때 전세 제도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기 위해 한번 이야기 해봤습니다.

여러분의 성공적인 투자를 기원합니다.

끝!